물이 잘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도 올리브 나무는 깊이 뿌리내립니다. 메마른 땅이 오히려 나무를 강하게 만들고, 그 열매는 더 깊은 맛을 품는다고 합니다. 진주가 고통을 덮으려 겹겹이 층을 쌓으며 자라듯, 무쇠가 풀무불과 망치질 속에서 단단해지듯, 사람도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아픔을 지나며 성품이 빚어집니다. 풍상을 견뎌낸 구부러진 소나무가 오히려 품격을 더하듯 상처 없는 단단함은 없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구부러졌다는 말이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설계하셨기에, 구부려졌어도 아름답게 회복될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의 생각이 나를 끌고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 의미는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분별하고 사랑하고 책임지고 돌보고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적 성숙도 같은 방향을 말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큰 그림은 하나님의 형상과 세상에 대한 사명이며, 예수님은 무너진 형상과 사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성숙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과 사랑의 성품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롬 13:8-10),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요일 3:17-18) 순종하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영적 싸움이 드러납니다. 바울은 생각을 방향성으로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으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으로 이끕니다(롬 8:6-7). 결국 영적 성숙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이 성령께로 맞추어 정렬되는 변화입니다. 그래서 낙심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만났지만 다시 바다로 돌아간 베드로, 그리고 그런 그를 찾아오신 예수님.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물에 주님의 한 마디에 물고기가 가득 차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와서 밥 먹자.” 그 음성이 낙심한 영혼을 다시 살립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걸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 제 생각의 방향을 바꿔 주세요. 비교에서 감사로, 정죄에서 복음으로, 무관심에서 돌봄으로 방향을 바꿔주십시오.” 구부러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마음은 주님의 은혜로 그분 앞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고 오히려 품격 있는 명품의 성품으로 옷 입게 될 것입니다. 손일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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